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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어느덧 광복(光復) 80주년이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주권'과 '자유'를 회복한 이 날에 선조들은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광복절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후 눈부시게 성장하며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지금 인공지능(AI)에 의한 또 한 번의 대전환기를 맞이했다. 비록 지금은 80년 전처럼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 아니고, 충분한 국력도 인정받고 있지만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다. 일례로 과거 대한제국은 주변 열강들과 달리 근대화를 소홀히한 결과로 군사, 경제적 자립에 실패했으며 주권을 위협받는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를 오늘날 AI에 적용하면 어떨까? AI가 이미 국가의 행정, 국방, 산업 전반을 빠르게 혁신하고 있는 요즘이다. 이 가운데 미국·중국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개발한 AI 모델과 서비스는 이미 '글로벌 표준'의 지위마저 확보해 가는 모양새다. 동시에 우리가 외국 AI 기술에 종속될수록 대한민국은 미래 국가 운영, 국방,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란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최근 소버린 AI(sovereign, 주권)의 조기 확립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국내 전반에 널리 퍼진 이유다.

그러나 무엇이 진정한 소버린 AI인지, 조속한 AI 주권 확립에 필요한 선결과제는 무엇인지 아직 우리 정치권과 산학연의 생각은 모두 달라 보인다. 이에 지난 9년간 중립적 위치에서 국내 AI 생태계의 권익을 대변해 온 한국인공지능협회(KORAIA) 김현철 회장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통합의 안'을 물어보았다.

한국인공지능협회는 알파고가 등장하기도 훨씬 전인 2012년, 머신러닝 스터디 모임으로 시작해 2017년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협회로 출범한 단체다.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1000여개의 AI 관련 회원사를 보유하고 AI 인재 양성, 생태계 육성, 정책 개발 등에 전방위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Q. 소버린 AI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는 커지고 있지만, 그 정의와 범위는 아직 명확하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는 단순한 마케팅 용어로, 누군가는 자체 AI 모델 개발 정도로 치부하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소버린 AI란 무엇일까?

소버린 AI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개념이다. 기본적으로는 한 국가가 자국의 이익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AI를 개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전략적 자율성' 확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차원을 지닌다. 첫째는 '국가 핵심 기능의 자주성'이다. 앞으로는 AI가 국방, 재난 대응, 사법, 공공 의료처럼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영역까지 파고든다. 이때 AI 주권을 지닌 국가라면 관련 위기 상황에서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AI 기술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둘째는 '전략 자산 통제권'이다. AI는 전세계 국가안보 관점에서 이미 핵심 전략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가운데 고성능 AI 모델과 인프라를 외부의 간섭 없이 우리 의지대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건 대단히 중요한 미션이다. 이를 바탕으로 '소버린 AI'를 다시 정의해보자. 이는 결코 특정 기술 보유 여부 정도로 한정지을 수 없다. 그보다는 AI에 의한 문명사적 전환기에서 우리가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 확보에 필요한 '총체적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Q. 현재 대한민국은 AI 주권 강화 측면에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놓치고 있나

현재 한국의 AI 주권은 세계 최고 수준의 강점을 지닌 분야의 '잠재력'과 구조적 '취약점'으로 인한 위기가 공존하는 상황으로 진단된다. 잘하는 점은 단연 AI 시대 구현에 필수적인 강력한 하드웨어다.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HBM) 같은 첨단 반도체 분야 리더십은 우리의 핵심 자산이다. 이는 자동차, 산업용 로봇, 배터리 등 제조업 전반에 걸친 AI가 물리적 세계와 결합하는 '피지컬 AI' 시대에 한국이 소프트웨어의 열세를 만회할 발판이 될 수 있다. 전국적인 통신망과 첨단 기술에 대한 우리 국민의 높은 수용성도 이와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고유의 차별점이다.

반면 아쉬운 점은 생성형 AI 산업 전반에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다. 개인적으로 이것을 '투자 부족 → 인프라 미비 → 연구 성과 저하 → 핵심 인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로 보고 있다. 글로벌 지표상 한국의 민간 투자는 최하위권이며, 이는 모델 개발에 필수적인 GPU 인프라 부족으로 직결됐다. 또한 특허 수는 많지만 질적 수준이 선진국에 미치지 한다. 또한 경직된 연구 환경과 보상의 한계로 인해 최고급 인재들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AI를 그저 여러 기술 중 하나로 치부했던 과거 정부의 인식이었다. 이로 인해 세계 최고의 손발(하드웨어)을 갖고도 정작 AI의 두뇌(소프트웨어 및 전략)는 제때 키우지 못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이런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강력한 AI 주권 확립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기대감이 크다.

Q. 진정한 AI 주권 확립을 위해 우리의 강점은 계속 강화하고, 약점은 빠르게 보완해야 한다. 우선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책, 컨트롤타워, 외교 3가지 관점에서 전면적인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

먼저 정책적으로 AI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소버린 AI와, 민간 효율성을 위한 상용 AI로 명확히 구분하여 인공지능 기본법에 명시해야 한다.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혁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인공지능 기본법이 동맹국인 미국의 'AI 액션 플랜' 같은 큰 흐름과 충돌하지 않도록 검토하여,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불확실성에 직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컨트롤타워 측면에선 국가인공지능위원회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AI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범부처 메타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범부처 AI 정책과 예산을 총괄·조정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되어 부처 간 벽을 허물고, 국가적 AI 역량을 결집하는 구심점이 되도록 대통령이 직접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또한 최근 대통령실에 인공지능 미래수석이 신설되고, 민간 최고 전문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선임된 것도 매우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외교의 관점도 중요하다. 미국과의 AI 동맹에서 대한민국이 더 이상 단순 부품 공급업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강점인 메모리 반도체, 패키징, 전력·냉각 기술 등을 AI 모델 및 응용 프로그램과 결합한 'K-Allied(한국형 동맹) 패키지'를 전략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 표준의 상호 인정, 수출 금융 지원 등에서 실질적인 우리 몫을 확보하고, 우리 강점이 기술 동맹의 규칙에 명시되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Q. 정부뿐 아니라, 함께 손발을 맞출 민간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들이 당장 직면한 생존 문제의 해결과 더불어 국가적 AI 주권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우리 기업들이 LLM(대형언어모델) 같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기술 경쟁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정면으로 맞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생존과 주권 확보를 동시에 이루려면 이중 트랙(Dual-track) 전략이 매우 효과적일 것으로 본다.

첫 트랙은 단기적 생존과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에이전트 경제' 선점이다. LLM 개발 경쟁에 매몰되기보다, 지금 바로 다음 단계인 에이전트 AI에 따른 거대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에이전트 AI는 실제 업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디지털 노동자'로서 AI 기업의 본격적인 수익 창출을 돕는 거대한 시장의 시작점이 된다. 여기에는 스마트폰 앱스토어 혁명 이상의 잠재력이 있다. 제조, 금융, 법률 등 각 전문 분야에 최적화된 에이전트 AI 개발에 집중해야 할 때다.

다음 트랙은 장기적 주도권 확보를 위한 '피지컬 AI' 생태계 구축이다.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제조업 강점을 AI와 융합하는 전략이지만 냉철한 현실 인식도 필요하다. 로보틱스 핵심 기술력은 아직 선진국에 뒤처져 있고, 로봇 본체도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전의 기회도 있다. 로봇의 몸 대신 우리의 압도적인 반도체 기술력으로 로봇의 두뇌를 장악하는 '두뇌 플랫폼(Brain Platform)'을 선점하면 승산이 있다. 특정 로봇에 종속되는 AI가 아니라 다양한 로봇 하드웨어에 탑재 가능한 표준화된 추론 칩과 운영체제(OS), 개발도구(SDK)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전략이다. 이로써 기존의 하드웨어 종속을 우리 플랫폼에 대한 종속으로 뒤집을 수 있다. 이를 우리의 반도체 공정과 자동차 조립 라인부터 시작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정부가 지원하는 디지털 트윈 테스트베드에서 개발 효율을 극대화하자. AI 경쟁의 판도를 바꿀 비대칭 전력이 확보될 것이다.

이 밖에도 모든 기업이 국제 규제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거래 대상이 미국의 제재 대상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Q. 그렇다면 AI 주권 강화를 위한 한국인공지능협회의 역할과 비전은?

우리는 단순히 한국 AI 생태계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다. 그보단 미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전략적 나침반'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대선에는 당시 이재명 후보자와 정책 협약식을 맺어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핵심적인 AI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 바 있다. 그 후속 조치로 우리 협회는 AI 기술의 거시적 흐름을 조망하는 'AI 발전 5단계 종합 분석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우선 AI의 진화를 5단계(인식형→생성형→에이전트형→피지컬형→시스템형)으로 나눴다. 이어 각 단계가 인프라와 같은 후방 산업부터 사회적 영향과 연결되는 전방 산업까지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하는지 보여주는 로드맵이다. 이를 통해 AI 산업 종사자들이 기술 흐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도록 돕는 것이 주된 목표 중 하나다.

또한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이 '규칙 수용자'가 아닌 '규칙 제정자' 동맹으로 거듭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한 공공 부문의 '자주 스택(Sovereign-Stack)'과 해외 시장을 위한 '동맹 스택(Allied-Stack)'을 함께 구축하는 듀얼 스택 전략을 함께 제안하고 있다. 이처럼 구체적인 상황 진단과 돌파 전략을 통해 정부와 산업계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돕는 것이 AI 주권 확립에 기여하는 한국인공지능협회의 핵심 역할이다.

나아가 'AI 3대 강국' 같은 수사적 목표를 넘어 한국이 실질적인 범용인공지능(AGI) 보유국으로 도약하는 데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협회도 직접 행동에 나선다. 현재 AGI 개발을 위한 핵심 컴퓨팅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고, 이를 총괄할 민간 주도의 '프론티어 AGI 연구소' 같은 새로운 거버넌스를 설립해 실행에 나설 계획이다. 이 연구소는 국내외 최고 석학들과 기업이 함께 AGI의 근본적인 문제를 연구하고 돌파구를 찾는 전진기지가 될 것이다. 또한 AGI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결핍을 보완하고,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파트너라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도 힘쓰겠다.

Q. 최근 SKT의 광복절 기념 'AI 독립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해 AI 주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AI 독립의 본질적 의미와 도전 과제'가 있다면?

광고 출연이든, 칼럼 작성이든, 인터뷰든 모든 대외적 활동의 목표는 '인공지능의 민주화'다. 기술이 소수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가 되려면 먼저 우리 스스로 '기술의 주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광복절은 우리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던지는 시점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민족의 주권을 되찾았다면,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기술과 데이터 영역에서 새로운 주권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특히 그 궁극적 지점에 있는 AI 기술을 외부에 의존한다면? 국가의 미래를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에 다시 강조하는 건 AI 경쟁을 단순한 산업, 기술 개발 문제로 축소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AI에는 우리 문명의 생존 방식, 다음 세대의 명운을 결정할 '문명사적 도전'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과 초고령화라는, 국가 시스템의 존립마저 위협하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주력 산업이라고 말했던 것들도 후발주자들의 강력한 도전을 받는 중이다. 사회 양극화의 문제 또한 심화되고 있다. AGI는 이런 국가적 난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유일한 돌파구이자 메타 솔루션이다.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산업 구조 혁신, 국제 무대에서의 영향력 등을 우리에게 안겨줄 것이다.

끝으로, 나는 AI가 인간과 사회의 결핍된 고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완하거나 초월하게 하여 존재 전체를 온전함으로 이끄는 지성으로 정의한다. 단순히 인간의 지능을 모방하는 기계가 아니다. AI는 우리 각자의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약점을 발견하고 치유를 돕는 동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개인과 사회가 고립에서 연결로, 분리에서 통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 같은 개인, 사회, 국가적 동료로 AI를 바라볼 때 과연 이를 타국의 손에 맡길 수 있는 걸까? 답은 정해져 있다.